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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교

한국의 아픔을 함께 해 온 왜관수도원

경북 칠곡군 왜관읍...
경부선 기차를 타고 가다 대구역 바로 전역인 왜관역이 있다.
이 왜관은 한국전쟁 당시 치열한 전투가 벌어졌던 곳이기도 하다.
이 곳에는 한국의 암울했던 역사만큼이나 힘든 생활을 하면서 피난을 오신 분들이 있다.
바로 성 베네딕도회 왜관 수도원 수사님들이다.

성 베네딕도회는 한국 가톨릭 남자 수도회 중 가장 먼저 한국에 온 수도회이다.
성 베네딕도회는 그 당시 조선 교구의 주교였던 뮈텔 주교의 요청에 따라
1909년 서울 백동(현 혜화동, 혜화성당과 성심신학교 자리)으로 독일 베네딕도회 오틸리엔 수도원에서 5명의 수도승 파견하였고, 1913년 대수도원으로 승격되었다.
당시 프랑스 선교사들의 반대로 서울에서 선교활동을 실현시키지 못하고 1920년 원산교구 설정과 동시에 북방선교를 위촉받아 1920년부터 철수하기 시작하여 1927년 함경남도 덕원으로 모두 이전하게 되었다.

북한 덕원에서 수도생활을 하면서 중국 땅인 연길에 1934년 아빠스 좌로 수도원이 승격이 되어 덕원과 연길에서 수도회가 운영되고 있었다.
그러던 중 연길은 1946년에, 덕원은 1949년에 공산당에 의해서 추방되었고 대부분의 수도회 신부들이 체포당하여 죽음을 당하였고 그 중에 살아남은 수사들은 추방당하였다고 한다.

한국전쟁 중 부산에서 피난생활을 하였고 월남한 20여명의 신부와 수사들이 다시 모여서 왜관에 정착하였다고 한다.
아는 신부님의 말씀을 들어보면 그 당시 임시로 왜관에 자리를 잡아 수도생활을 했고 통일이 되면 예전에 수도생활을 했던 덕원으로 되돌아갈 생각이었는데, 너무나 오랜 기간 휴전이 되어 이제는 왜관에 완전히 자리를 굳혔지만 한국과 북한이 통일이 되면 다시 북녁 땅으로 되돌아 갈 가능성도 있다는 말씀을 들었다.

한국의 아픈 근대 역사 속에서 함께 아파하며 평화를 위해서 기도하시는 수사님들...
예수님께서 자신의 십자가로 인류구원의 소명을 완수하시기 위해서 십자가의 가시밭길을 묵묵히 걸어가셨듯이 이 분들은 수도자로서 걸어가야 할 길 외에 한국의 고난과 전쟁으로 인한 아픔을 직접 겪으시고 그 고통을 기도로서 극복하며 한국전쟁 당시 가장 치열했던 왜관에 자리를 잡아  조국의 평화를 위해서 끊임없이 기도하여 마침내 동토의 땅인 북녁 땅에 복음의 씨를 뿌리기 위해서 그 동안 그렇게 채찍질 당하고 가시관을 써야하는 아픔을 겪었는지도 모른다. 마치 예수님께서 인류구원을 위해서 고난을 당하신 것 같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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