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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교

개신교 목사의 가톨릭 비판에 대한 반론


개신교 대표신문인 크리스천투데이에 나온 석기현 목사, “천주교는 믿는 신 다르다"에 대한 반론 포스트입니다.

이 포스트는 천주교신자인 저의 개인적인 글이며 천주교의 공식의견과 다를 수도 있습니다.
(아마 천주교에서 어느 한 목사의 주장에 의견을 내놓을 만큼 한가하진 않을 겁니다.)


(참고 - 검은색 글씨는 석목사의 주장이며, 파란색 글씨는 저의 반론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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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예수를 믿는다 해도 ‘오직 예수그리스도’만을 유일한 구세주로, 유일한 중보자로 믿지 않으면 이미 ‘다른 예수’를 믿는 것이며 ‘다른 예수’는 우리가 믿는 예수님이 결코 아니다. 사도들이 전파하지 아니한 ‘다른 예수’를 전하고 있는 천주교는 기독교와 전혀 ‘다른 종교’이며 결코 기독교의 ‘어머니 교회’가 될 수 없다”

삼위일체 하느님을 흠숭하는 가톨릭
가톨릭(천주교)은 오직 한 분이신 하느님, 즉 성부와 성자와 성령 삼위일체 하느님을 믿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만을 유일한 구세주로 믿고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베드로 사도에게 “내가 이 반석(베드로) 위에 내 교회를 세울 터인즉 죽음의 힘도 감히 누르지 못할 것이다.”(마태 16,18) 하고 말씀하시며 교회 창립을 예고하셨고, 부활하신 다음에도 베드로 사도에게 나타나셔서 “내 양들을 잘 돌보아라.”(요한 21,16) 하고 당부하셨습니다.
가톨릭은 성 베드로를 제1대 교황으로 2000여년 동안 사도들로부터 이어져오는 교회입니다.
'기독'(基督)은 그리스어 'Χριστός'(Christos) 의 중국어 음역으로서 가톨릭, 정교회, 개신교를 모두 총칭하는 말입니다.
따라서 천주교와 기독교를 비교대상으로 놓고 본다는 말은 어법상 올바르지 않으며, 천주교(가톨릭)와 개신교 또는 천주교와 프로테스탄트 라고 말해야 어법상 올바른 말이 됩니다.

2. “천주교가 종교통합운동의 주동이 되어 기독교를 소위 ‘나뉘어진 형제’라며 미소작전으로 나오고 있다”“이 같은 간계에 기독신자들이 미혹당하고 ‘마음이 그리스도를 떠나 부패하게 되는 일’이 만연하고 있다”

교회일치운동
석목사는 교회일치운동을 종교통합운동으로 왜곡시켰습니다.
가톨릭은 종교통합운동을 하지 않습니다.
이웃종교는 배척이나 타도의 대상이 아니라 서로 사랑해야 할 이웃입니다.
각 종교의 교리는 타협될 수 없는 독특한 성격이 있기 때문에 종교통합운동이라는 것은 말도 안되는 것입니다.
교회일치운동을 종교통합운동으로 왜곡시키는 석목사의 본의가 무엇인지 궁금하군요.
천주교의 교회일치운동은 예수님의 뜻이 그러했기 때문입니다.
"아버지, 이 사람들이 모두 하나가 되게 하여 주십시오, 아버지께서 내 안에 계시고 내가 아버지 안에 있는 것과 같이 이 사람들도 우리들 안에 있게 하여 주십시오. 그러면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셨다는 것을 세상이 믿게 될 것입니다."(요한17,21)

사도 바오로는 여러 성경에서 이렇게 말합니다.
"그리스도의 몸도 하나이며 성령도 하나입니다. 이와 같이 하느님께서 여러분을 당신의 백성으로 부르셔서 안겨 주시는 희망도 하나입니다. 주님도 한 분이시고 믿음도 하나이고 세례도 하나이며"(에페4,4-5)하였습니다. 왜냐하면 "세례를 받아서 그리스도 안으로 들어 간 여러분은 모두 그리스도를 옷 입듯이 입었습니다.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여러분은 모두 한 몸을 이루었기 때문입니다."(갈라3,27-28)

제2차바티칸 공의회 "일치 운동에 관한 교령" 중 "갈라진 교회들에 대한 견해"에 교회일치운동이 필요한 이유를 설명하고 있습니다.

갈라진 교회들에 대한 견해



3. “천주교에서 십자가에 달린 예수란 그저 동상으로 만든 장식에서나 발견 될 뿐 ‘내 죄를 대신해 죽으심으로 속죄사역을 완성한 구세주’로 믿고 의지하고 감사하는 대상이 되지 못 한다” “예수님의 모습을 온갖 ‘다른 예수’로 바꿔놓았다”
대표적인 예가 ‘거룩한 성체(聖體)’이며 성찬식의 떡이 예수님의 몸의 ‘상징’이 아닌 소위 ‘화체설(化體說)’ 즉 떡 그 자체가 바로 예수그리스도의 자신인 ‘진짜육체’가 되어 버린다고 말했다.

성상(聖像)과 성체성사
비판의 핵심은 성상과 성체성사이군요.

가톨릭신자들은 십자가의 예수님을 장식으로 만들지 않습니다.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님을 보면서 예수님을 생각하며 기도하기 위한 것입니다. 죄많은 인간을 속량하기 위하여 십자가에 못박혀 돌아가신 예수님을 생각하고 기도합니다. 구약에 보면 솔로몬왕도 성전에 거룹상을 세워 하느님을 찬미하였던 구절도 있으며, 모세도 구리뱀을 만들었습니다.
이렇게 하느님을 찬미하기 위해 만든 상은 우상이 될 수 없습니다.
현대의 우상은 오히려 배금주의에 젖어 돈이면 모든 것을 해결하려고 하는 것이 우상숭배 아닐까요?
개신교의 모(母)교회라고 할 수 있는 루터교회도 성상을 만들거나 예수님 형상이 있는 십자가를 걸어두는데 이것은 어떻게 설명하시겠습니까?
강남대형교회의 예수님상이나 순복음교회의 부조상, 연세대의 언더우드상 어떻게 설명하시겠습니까?
내가하면 로맨스, 남이하면 불륜인가요?

성체성사는 예수님께서 직접세우신 성사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자주 비유를 들어 설명해 주셨지만 성체성사만큼은 직접적으로 말씀하셨습니다.
"받아먹어라. 이는 내 몸이다."(마르14,22)
"이것은 나의 피다. 많은 사람을 위하여 내가 흘리는 계약의 피다."(마르14,24)
"이것은 내 피로 맺는 새로운 계약의 잔이니 마실 때마다 나를 기억하여 이 예를 행하여라." (1고린11,25)

어디에도 예수님은 나를 상징한다고 하시지 않았습니다.
직접적으로 몸과 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또한 주님의 사도들은 매주 한 번 모여 함께 나눈 공동체 회식을 '주님의 만찬' (1고린11,20)이라고 불렀습니다.

4.또한 십자가에서 큰 고통을 받은 예수님은 몹시 진노하고 계시는 ‘성난 예수’이기에 직접 죄인들을 찾아가기 아주 어려우며 그러한 예수님 대신 자비를 베풀어줄 것을 예수께 요청하는 또 하나의 ‘중보자’가 필요한데 그것이 소위 ‘성모마리아’ 라고 설명했다.
“천주교에서 예수님은 하늘에 계시니 실제로 무엇을 행사 할 수 없다”며 “이에 교인들은 전권과 실권이 있는 ‘그리스도의 대리자’ 교황을 예수님보다 오히려 더 사모하고 받들게 된다”고 말했다. 또한 천주교는 사제가 성직수임을 받을 때 ‘alter christus’(another christ) 즉 ‘또 다른 그리스도’라고 부르며 천주교 신자들이 예수께 나아가려면 반드시 사제를 거쳐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성모마리아와 교도권
성모마리아는 하느님의 뜻에 온전히 순명했던 분입니다.
처녀가 임신을 했을 경우 죽을 수 있던 당시 상황에서도 하느님의 뜻이었기 때문에 온전히 받아들였습니다.
가톨릭이 성모님을 공경하고 전구하는 이유는 예수님의 어머니이며, 우리 신앙인들의 모범이 되시기 때문입니다.
가나의 혼인잔치에서 포도주가 다 떨어진 것을 아시고 어머니는 예수님께 부탁드립니다. 예수님은 아직 때가 아니라고 말씀하셨지만, 어머니는 사람들에게 모두 그가 시키는대로 하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리고 예수님은 물을 포도주로 변화시키십니다. 바로 첫번째 기적이었죠.
가톨릭신자들은 하느님께 직접적으로 기도도 드리지만 때론 어머니를 통하여 하느님께 기도를 드립니다.
성모님과 함께 하느님께 기도드리기 때문에 "저희를 위하여 빌어주소서"하고 기도합니다. 왜냐하면 성모님은 신이 아니기 때문이죠.
개신교 성경에 예수님께서 어머니께 "여자여"라고 번역한 구절이 있는데 이것은 오역의 대표적인 것입니다. 개신교 성경에 예수님께서 어머니께 "여자여"라고 했다고 예수님께서 어머니를 하찮게 여긴다고 생각하는 개신교 신자가 많은 줄 압니다.
예수님께서 어머니께 "여자여(개신교 성경)"라고 했던 귀나이(guinai)는 셈족이 자신의 어머니 또는 귀부인을 부를때 사용하는 극존칭입니다.
영문성경에도 정중한 존칭인 madam으로 번역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올바르게 번역하려면 "어머님"이라고 번역해야 합니다.
공동번역 성서에서는 "여인이여"로, 가톨릭 새번역 성경에서는 "여인이시여"로 번역되어 있습니다.
한국 개신교 성경의 번역 오류, 정말 문제 많습니다.

교황의 권위를 예수님보다 더 높인다고 하는 석목사의 진의가 궁금합니다.
세상의 어떤 가톨릭신자도 인간 교황을 하느님이신 예수님보다 높이는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석목사의 이런 근거없는 비판은 가톨릭에 대한 무지의 소산입니다. 오직성경만을 주장했던 루터의 분열로 시작된 오류입니다.
가톨릭은 성경, 성전, 교도권을 중요시 합니다. 이런 배경지식없이 오직성경만을 주장하기 때문에2000년 동안 내려온 교회의 거룩한 전통인 성전과 사도전승의 교도권을 무시하는 발언을 하는 것이라 생각됩니다.
그리스도의 대리자라는 것은 가톨릭 성사를 집전하는데 있어 예수그리스도의 대리자로서 예식을 행하기 때문에 그렇게 말하는 것입니다.

5. 천주교는 다른 종교의 신들을 인정하기에 제1계명 ‘너는 나 이외에 다른 신들을 네게 있지 말지라’를 가르칠 수가 없어 천주교 십계명의 1계명은 ‘하나이신 천주를 만유 위에 공경하여 높이고’라는 식으로 제 마음대로 바뀌었다
우상 숭배하지 말라’는 제 2계명을 ‘적당히 수정해 얼렁뚱땅’ 넘길 수조차 없어 아예 삭제시켜 버리고 대신 제 3계명부터 하나씩 앞당겨 결국 마지막 제9계명과 제10계명을 둘로 분리 했다

십계명의 분류
개신교 목사가 이런 식의 무지한 발언을 하는 것을 보고 정말 놀랐습니다.
가톨릭의 제1계명이 개신교에서는 제1계명과 제2계명으로 나뉘어져 있습니다. 반면에 가톨릭의 제9계명과 제10계명이 개신교에서는 제10계명으로 합쳐져 있습니다.
그런데 탈출기(출애굽기) 20장을 읽어 보면, 현재 가톨릭이나 개신교에서 가르치며 사용하는 것처럼 '일, 이, 삼…'하는 번호가 매겨져 있지 않습니다. 그래서 십계명에 번호를 매겨 분류하다 보니 가톨릭과 개신교에서 차이가 나게 된 것입니다. 가톨릭과 루터교는 5세기의 성 아우구스티노가 분류한 방식을 따르고 있고, 정교회와 성공회 그리고 대부분의 개신교는 초세기 유다교 학자인 필론이 분류한 방식을 따르고 있습니다

개신교의 모교회라고 하는 루터교가 가톨릭에서 사용하는 성 아우구스티노가 분류한 방식을 따르는데 이것은 무엇으로 설명하시겠습니까?

6. 성경에 없는 7권의 위경에 대해 ‘천자중보설’, ‘연옥설’, ‘죽은자를 위한 기도’등 성경에서는 도저히 찾을 수 없는 교리를 뒷받침해 줄 근거가 필요해 1546년에서야 포함 시킨 것

희랍(헬라)어 성서와 제1, 제2경전
이스라엘 역사는 하느님께서 직접 개입하신 구원의 역사입니다.
그들의 역사 중 B.C1000년경 다윗의 아들 솔로몬 왕이 죽자 이스라엘은 두 왕국으로 분리됩니다. 북쪽은 이스라엘이고 남쪽은 유다인데 유다는 정통 다윗 왕가를 계승한 나라이지만 이스라엘은 다윗 왕가를 이탈한 나라가 됩니다(Ⅱ열왕기 17장).
그 이후 이들은 야훼를 배반한 죄로 이스라엘은 아시리아에 패망하고 유다는 바빌로니아에게 멸망당해 유배 생활을 하게 됩니다(Ⅱ열왕기 25장). 이것이 곧 바빌론 유배입니다.
이때 성전은 폐허가 되었고 예배 의식도 중단되었습니다. 예언자들은 그 까닭이 계약에 불충실한 때문이라고 정확하게 지적하고 자기네 죄를 깨닫고 물려받은 유산을 연구하기 시작하였는데 이때 율법을 전문적으로 연구하는 학자들과 주석가들이 나오게 되었습니다. 그들이 바로 성서에 등장하는 율법학자 즉 랍비들(개신교: 서기관)입니다.
그런데 중요한 것은 이 유배 기간 동안 자기들의 죄를 통회하는 랍비들에 의해 그들의 성서는 계속 기록되고 있었다는 사실입니다.
그 이후 B.C333년 희랍의 알랙산더 대왕은 페르시아를 점령하고 소위 세계를 통일하게 됩니다. 이때부터 지중해 세계의 많은 나라들이 공용어로서 희랍어를 사용하게 되지요. 이것은 역사적으로 매우 중요한 사실입니다.

이때부터 랍비(서기관)들에 의한 성서 기록은 히브리어뿐 아니라 희랍어로도 쓰이기 시작합니다. 더욱이 나라를 잃고 떠돌이 하던 유다인과 알랙산드리아 지방에 이민해 온 많은 유다인들과 특히 그 후손들은 히브리말을 잊어 버리고 그리스 문화에 동화되어 버리게 됩니다.
더더욱 우려되는 것은 이들이 자기 민족을 구원하신 하느님과 이스라엘의 뿌리마저 잃어버릴 위기에 처해졌으므로 원래 히브리어로 쓰여진 성서를 희랍어로 번역할 필요가 절실히 요구되어 B.C250년경 희랍어에 정통한 유다인 학자 70명이 알랙산드리아에 모여 성서를 희랍어로 번역하게 되어 완성한 후 이를 70인역이라 부르게 됩니다. 여기에는 순수 히브리어 성서에서 희랍어로 번역된 39권과 희랍어로 쓰여진 7권을 합쳐 총 46권의 성서가 출현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약 340여년간 사용해 오던 이 성서는 예수님께서 예언하신 대로 AD(주후)70년에 로마제국에 의해 예루살렘 성전이 함락, 파괴되고 유대인들이 팔레스티나에서 쫓겨난 후 이래서는 안되겠다고 여긴 율법 학자들은 AD90년경 유대인들이 율법을 간직하고 유대인이라는 의식을 가지고 살아가도록 하려는 취지에서 히브리 언어를 강조한 40권의 히브리어 성서 중 원본을 찾지 못한 1권을 제외한 39권만을 최종적으로 확정하고 희랍어로만 쓰여진 7권의 성서는 정경에서 제외 시켰습니다.

*이때부터 구약성서의 정경이 두 종류가 나타나게 됩니다.

* 팔레스티나 유대인 정경 : 제1정경(히브리 정경)

* 헬라(희랍)문화권 유대인 정경 : 제1경전 및 제2경전이라 불리는 정경목록 - 바룩서, 토비트서, 유딧서, 마카베오 상․하, 집회서, 지혜서 (7권)

* 이중 마카베오 상권은 원래 히브리어로 쓰여졌으나 원본이 분실되고 희랍어 번역본만 남아 있다고 하여 이것마저 제1경전에서 제외시켰습니다.

여기서 우리는 고집센 유다인의 한 모습을 또 볼 수 있습니다.
그런데  사도들과 사도시대 교부들 중 누구도 제 2경전이 성령의 영감을 받은 하느님의 말씀이라고 하는 것을 의심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습니다. 원래 제2경전이라는 용어는 중세기에 시에나의 식스토(1528-1569)에 의해 붙여진 이름이고 초기 교부 시대에는 제1경전, 제2경전 구분 없이 그저 “교회의 책들(Libri ecclesiastici)” 이라고 불렀습니다.
그러나 소위 종교 개혁자들은 16세기 이르러 제 2경전을 성경에서 제외시켜 버렸습니다. 그리고 루터는 또 1534년 독일어로 번역한 구약성서 끝에 제2경전을 "외경(Apokrypha)" 으로 간주하여 부록으로 붙여 놓았습니다.
원래 외경이란 용어는 “감추어진” 이라는 의미를 지닌 그리스어(희랍어,  Apokryphos)에서 나온 말로서 보통 사람으로서는 이해하기 힘든 “감추어진”내용을 담고 있다는 뜻에서 붙여진 이름이지만 지금은 이것마저 인정하지 않으려 합니다.
가톨릭 교회에는 정경(즉 교회의 책들)이외에 유다인들과 초대교회 신자들에게 읽혀지고 있던 책들도 많이 있습니다. 이런 책들을 “외경”이라고 하며 신앙생활에 유익이 된다고 믿고 있으나 개신교에서는 아무런 근거도 없이 이를 “위경(僞經)” 즉 “거짓된 책(Pseudepigrapha)” 이라고 합니다.
때문에 이 성서에 관하여 현재까지 가톨릭과 개신교간에는 그 용어상 차이가 있어 여기에 표시합니다.

가톨릭 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    개신교
제1경전  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    정경
제2경전  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    외경
외경     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  위경

※최근 꿈란동굴에서는 히브리어로 쓴 제2경전이 일부 발굴되었다고 합니다.
(출처 : 어제도 오늘도 그리고 영원히, 김안토니오 저)


결론 : 많은 개신교 신자들이 가톨릭을 모함, 비방하는 것을 어릴적 친구로부터, 집에 찾아오는 개신교신자를 통해서, 인터넷을 통해서 많이 봐왔습니다.
이런 주장들이 개신교 신자들의 문제인 줄 알았습니다.
그러나 오늘 신문을 보고 이런 주장들의 근원이 개신교 목사라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석목사가 비판한 위의 내용 이외에 다른 내용도 있지만 너무 황당하여 여기서 줄일까 합니다.
타 종교에 대해서 비판하기 전에 먼저 그 종교에 대해서 공부를 하고 해야하지 않을까요?
석목사가 이 글을 읽으실지 모르겠지만, 만약 읽는다면 언제든지 반론을 환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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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BlogIcon 지젝 2007.11.04 00:56

    그동안 많은 개신교식 성경 공부(?)라 불리는 잡다한 책들이 가톨릭의 성경 해석 방식은 틀렸다고 강하게 주장해왔지만 이렇게 목사가 직접적인 발표를 한 것은 처음인 것 같습니다.

    일단 푸하하하 웃어주고 코에 걸면 코걸이 귀에 걸면 귀걸이식으로 해석하는 개신교의 해석방식 때문에 도대체 어디서부터 그들의 논리를 건드려야 할지 모르겠더군요. 그들의 논리에 따르면 감히 인간 따위가 범접할 수도 없는 책을 인간의 힘으로 해석하려 들다니요. 아직 안수기도로 죽은 사람만 있지 돌로 쳐죽인 사람이 아직 없다는게 신기할 뿐입니다. 그들은 돌로 쳐죽이라는 구절도 감히 현대식으로 해석하나 봅니다. 텍스트대로 따라야할 주의 노비들이 말이죠.

    천주교 뿐만 아니라 옆 교회보고도 이단이라 외치는 목사들의 방식을 보면 그들은 스스로 무지한 신도들 위에서 또다른 그리스도 행세를 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궁금합니다. 자신이 할렐루야를 외치면 신도들이 따라서 할렐루야를 외치니 자신들이 신이 아닌가 하는 오만한 생각에 빠진 것인지도 모르겠군요.

    • BlogIcon 프코 2007.11.05 16:26

      지젝님이 말씀에 공감합니다.
      현재 개신교는 성경자유해석의 모순에서 헤어나올 수 없는 지경입니다.
      개신교 내부에서 이단이라는 명목으로 자체적으로 단속을 하고 있지만 소위 이단이라는 곳은 성경자유해석으로 온갖 신흥종교가 득세하고, 인간이 하느님이 되는 현실입니다.
      멀리 떨어진 교회에서 셔틀버스로 데리러 가고, 모셔다 주는 모습을 보노라면
      백화점 셔틀버스가 생각나는 이유가 뭘까요?
      왜 이세상에 죄가 들어왔는지 생각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인간의 교만때문이죠.
      목사님들의 가르침이 옳다면 상관이 없지만 얼마전 동영상을 보니 어떤 목사의 부당한 한마디에도 믿습니다. 아멘 하는 신자들을 보고 너무 놀랐습니다.
      더 큰 문제는 목사 자신이 한 말을 하느님말씀처럼 강요하여 내성도라고 하는 목사는 정말 지나치다라는 생각을 했습니다.

  • 맥시멈리스크 2007.11.04 15:09

    교회가 교회가 아닌 세상입니다.. 무릇 돈과 권력과 함께하여 썩지 않는것은 없다지만
    소위 '구원의 길' 이라는 종교마저 이렇게 썩을줄은 누가 알아겠습니까..
    마태오는 요셉이 다윗의 28대손이라고 하고..루가는 41대손이라 하는 그 성경구절은
    무시하고.. 오히려 온갖 자신들에게 이익이 되는 구절은 그대로 사용하는 편협한 사고를 지닌 목사들과 기독교인에게 신물이 날 지경입니다.

    • BlogIcon 프코 2007.11.04 17:05

      세상의 소금과 빛이 되라는 예수님의 말씀을 실천하지 않고 입으로만 외치는 많은 사람들이 있습니다.
      천주교회에 속한 사람일 수도 있고, 개신교회에 속한 사람일 수도 있겠죠.
      교회(예수님을 믿는 사람들의 모임)의 존재이유는 바로 세상의 소금과 빛의 역할을 함으로서 하느님의 존재를 사람들이 인식하고 모든 사람들이 그리스도를 믿고 따르게 만들어 구원에 이르게 하는 것인데...
      오늘날 교회들은 세상의 빛과 소금이 되기는 커녕 세상사람들보다도 더 비도덕적이고, 물질을 숭상하여 비신자들에게 비난받기 일쑤입니다.
      이렇게 된 이유는 기복신앙을 부추기는 리더의 문제가 아주 큽니다. 또한 기복신앙을 강조하다보니 자신이 원하는 성경구절을 발췌하여 이용하기도 합니다.
      이것이 과연 올바른 신앙입니까?
      이 세상에서 교회(천주교회든, 개신교회든)의 존재의 이유를 다시한번 생각해 볼 때인 것 같습니다.

  • 2007.11.05 20:08

    비밀댓글입니다

    • BlogIcon 프코 2007.11.05 20:27

      HFK님, 동감합니다.
      가톨릭에 대해서 제대로 교육받았으면 저런 식의 발언은 할 수가 없죠.
      문제는 개신교 목사의 가톨릭에 대한 지식이 저렇게 부족하고 배타적이라는 데서 앞으로의 날들이 걱정됩니다.

  • 사랑 2019.06.13 21:50

    사람들은 제각기 자신만을 믿는 사람도 있고
    천주교.개신교.이슬람교.불교.흰두교여러가지등등 많은 신들과 사람들을 숭배하고 삽니다
    가장 중요한 것은
    어려운 이웃을 도와주고
    가정이 화목하고
    못사는 나라에 도움도 주고
    한사람.한사람.종교를 존중해주고
    비퍄하는데는
    그 속깊은 데는
    탐욕이 가득하답니다
    주님을 외치고 주님을 위한다고
    하는 종교의 지도자들은
    서로 헐뜯고 서로가 옳다고 내세우는건
    옳지 않아요
    종교가 없는 분들중에 천국에 갈분들이
    더 많이 있을 수도 있죠
    종교는 존중해주는 겁니다
    내가 비판하면 비판을 받을것이요
    사랑하면 사랑 받게 됩니다
    종교계의 지도자들이여
    각성들 하시오
    사랑과 긍정의 말을 전파하도록합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