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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글

앞으로 세걸음, 뒤로 세걸음

어떤 상인이 장사를 끝내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한 스님과 함께 걷게 되었다
적막한 산길을 말동무 삼아 걸으면서 스님이 말했다

"이렇게 함께 길을 가는 것도 큰 인연이니
내 그대에게 인생을 살아가는 데
꼭 필요한 지혜의 말을 일러 주리다."

"지혜의 말이오?"
"그렇소 참을 수 없을만큼 화가 날 때는
꼭 이 말을 생각한 후에 행동하시오."

"대체 무슨 말입니까?"

"앞으로 세 걸음 걸으며 생각하고
뒤로 세 걸음 물러나 생각하라.
성이 날 때는 반드시 이 말을 생각하시오
그러면 큰 화를 면할 것이오."

상인은 스님의 그 말을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며 집으로 향했다
집에 도착했을 때는 밤이 사뭇 깊었다

그런데 방문 앞에 웬 신발이 두 켤레가
나란히 놓여있는 것이 아닌가!
하나는 아내의 신발
다른 하나는 하얀 남자 고무신이었다

창에 구멍을 내고 들여다 보니 아내는
까까머리 중을 꼬옥 껴안고 잠이 들어 있었다

상인은 화가 불처럼 치밀어 올라
부엌으로 가서 식칼을 가지고 뛰어 나왔다
   
막 방문을 들어서려는 순간 스님의 말이 생각났다
상인이 씨근덕거리며 스님의 그 말을 외면서
왔다갔다 하는 소리에 아내가 깨어
밖으로 나오며 반갑게 맞이했다

이윽고 중도 뛰따라 나오며
"형부 오랫만에 뵙습니다."
하며 인사를 하는 것이 아닌가
까까머리 중은 바로 상인의 처제였던 것이다

상인은 칼을 내 던지며 스님이 들려 준 말을
다시 한 번 외쳤다
"앞으로 세 걸음 걸으며 생각하고
뒤로 세 걸음 물러나 생각하라!"

                
              
        - 좋은글 중에서 -

나의 생각
많은 사람들이 마음 속의 여유를 잃어버리고 살아가고 있습니다.
길을 걸어갈 때도, 일을 할 때도...항상 바쁘게 살아가고 있습니다.
몇 초만 마음을 가라앉히고 생각해 보면 별 것 아닌 것을...
마음에 담아두고 아파하거나 나의 조급한 성격때문에 다른 사람에게
상처를 주었습니다.
이제 그러지 말고 타인을 위해서라는 거창한 말 대신 나를 위해서라도
몇 초의 여유를 가지고 생각하면 나는 물론이고 주변의 사람들과
평화롭게 살아갈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해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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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BlogIcon 玄雨(noirepluie) 2006.09.15 03:19

    저는, 그 한분을 위한 삶을 감당하기는 어렵습니다. 신을 믿지 못해서도, 믿어서도 아닙니다.
    삶이란, 인간이 온전히 짊어져야 하는 것입니다. 누군가가 그 짐을 나를 위해 대신 지어준다고 하여도 그 짐은 본래 제게 속해 있는 것이니 그 나고 감도 제가 나고 감에 따를 것입니다.
    신께서는 예수님을 통해 인간의 죄를 사하셨을지 모르나, 아직 저 스스로 저를 사하지는 못했기에 웃음과 죄와 슬픔과 그 모든 것을 아우르는 삶을 짊어지고 가고자 합니다. 믿음이 없어서도, 모자라서도 아닙니다. 다만 저는 그것을 신이라는 이름으로 부르지 않고 '진리' 라고 부르며 부처께서도 스스로의 업보는 어찌하시지 못했다는 그 말에 수긍하기 때문입니다.
    스스로가 모든 것을 버리면, 스스로는 편해지겠지만 그것은 나 자신의 삶이 아닙니다. 신께서 계시다면, 그리고 제가 진정 행복하시길 바란다면 저 스스로가 삶을 짊어지고 가는 괴로움조차 제게는 조그맣고 소소한 기쁨이란 것을 아신다면, 당신을 믿지 않거나 의심함 조차도 사랑하실 것이라고 믿습니다.

    • BlogIcon fco 2006.09.16 00:00

      현우님께서 삶은 짊어지고 가야할 길이며 삶을 지고 가는 힘듬, 괴로움조차 기쁨으로 생각하신다는 현우님의 삶에 대한 생각을 존중합니다.
      사람마다 생각하는 삶에 대한 정의는 모두 다 다를 것입니다.
      삶의 주체는 바로 자신이며 세상의 60억이면 60억 모두 다른 삶을 살아가고 있기 때문입니다.
      자신을 포기하고 하느님께 모두 바치는 삶 또는 자신의 불굴의 의지로 살아가는 삶, 바쁘게 살아가는 삶....
      이 모든 삶이 근본적으로 추구하는 바는 자신이 행복해 지기 위해서가 아닐까요?